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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공간, 다른생각 : 동상이몽 (同床異夢)”

“Same Space, Different thoughts: Same bed, different dreams”

문민의 작품세계

 

단절된 소통의 복구와 관계성 회복

 

이 태 호(미술평론가, 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칠레 서쪽의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는 이스터 섬에는 전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바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Moai) 석상들이 그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석상들은 넓은 이마와 긴 코를 가진 얼굴, 그리고 대부분의 석상들이 모두 바다 쪽을 등지고 섬의 중앙을 향해 한 방향만을 바라보며 줄지어 서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모아이 섬 전체에서 약 900개 이상이 발견된 이 석상들의 제작방법은 물론이고 누가, 왜 이렇게 많은 수의 석상들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거론될 정도이다.

 

필자가 서두에서 모아이 석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조각가 문민이 이번 첫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다름 아닌 모아이 석상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묵직한 양감(量感)과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조형미가 모아이 석상의 그것과도 매우 닮아있다. 여기에 작가는 신(神)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그렇다면 작가가 모아이 석상을 통해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모아이 석상의 신비스러운 비밀의 문처럼, 문민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조심스럽게 열어볼 수 있다.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할 때,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든 작품에 눈과 코는 표현되어 있지만, 입은 공통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그 다음으로는 인물형상의 머리 부분 전체 혹은 일부가 절단되어 있다는 점이다. 과연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 문민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통과 관계성에 대한 문제’이다. 입은 사라진 채, 딱딱하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대한 형상들은 소통과 사회적인 관계성이 단절된 현대인들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다. 여기에는 현대사회의 모순된 구조와 억압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외치고는 싶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와 금기(禁忌, Taboo) 역시 내포되어 있다. 세상을 향한 젊은 작가의 무언(無言)의 절규이자 외침인 것이다. 이처럼 작가 문민의 작품 속에는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서 점차로 그 존재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휴머니티뿐만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단절과도 같은 부정정인 현상들은 현대인들의 ‘갈등’과 ‘반목’, ‘모순’과 ‘위기’에 대한 작가의 역설적 공격 내지는 비판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문명권으로 알려진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미해독(未解讀) 문자인 ‘롱고롱고(Rongorongo)’가 소통과 관계성이 단절된 현대인의 상징과도 같은 것처럼, 작가 문민의 이번 작품들 역시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같은 공간, 다른 생각 :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생각과 같은 편, 같은 위치, 같은 상황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가진 상황들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추어진 속내를 가리키는 것이자 같은 공간속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정치적인 사회구조를 상징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정부의 말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모습과 구조적인 모순을 보면서 작가는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모순과 단절, 현실적인 위기와 갈등을 비판하면서도 그것들을 그대로 방치해 놓은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민의 작품 속에는 그것들을 극복하고 치유하려고 하는 희망적인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암시적인 표현방법들이 바로 그것이다.

 

잠시 작품의 제작기법으로 눈을 돌려보자. 묵직하고 거대한 형상의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전 모양의 크기에서부터 커다란 원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원형들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작품형태가 완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살아있는 세포와도 같이, 하나하나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완결된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작가에게 있어 살아있는 세포로서의 의미를 지닌 원형적인 형태는 모든 생물의 기능적인 원형(原型)이자 구조적인 기본 단위로서 이것은 현대사회의 ‘소통과 관계성의 단절에 대한 극복의 의지이자 표현’과 다름 아닌 것이다. 동시에 제한되고 억압되어 심지어는 금기시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원형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형태를 통해 순화시키면서 현대인들의 관계와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적인 역할 또한 담당하고 있다.

 

더 나아가 문민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호흡, 즉 관객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인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이 전시장에 들어서게 되면, 마치 그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이를 감지한 센서(sensor)에 의해 공기(안개)가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우게 된다. 모든 생물체에게 있어 공기는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건이자 만물의 근원이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작가에게 있어 공기는 관객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위한 매개체이자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관객들의 참여에 의해 그의 작품들은 모아이 석상들처럼 비로소 신비스러운 존재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제작방법과 매체활용을 통해 ‘단절된 소통의 복구와 관계성 회복’을 꿈꾸고 있다.

 

모아이 석상들처럼, 거대하고 묵직한 양감과 단순하게 표현된 그의 이번 작품들은 수수하면서도 소박한 고졸미(古拙美)를 지닌 우리네 제주도의 돌하르방과도 닮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돌(石) 대신에 ‘철(鐵)’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민에게 있어 ‘철’이라는 재료는 견고한 물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담아낼 수 있는 재료이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식되는 철의 특성에 따른 자연스러움,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졸(古拙)한 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단면들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아울러 이렇게 표현된 그의 작품 속에는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과 축적된 형태로서의 시간성뿐만이 아니라 공간성 역시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비록 이스터 섬의 문명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지만, 모아이 석상들이 현재에도 남아서 끊임없는 상상력을 자극하듯이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이라는 보물을 선사하고 있다. 이제 보물섬을 향해 항해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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