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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나를 비롯한 그대들 에피소드7 : <무명인의 부산물> part.2

 

 《무명인의 부산물》은 《인간기술서》가 다뤘던 ‘기록 가능한 인간’의 구조에서 벗어나, 기술되지 않은 존재들과 그 흔적 |통계의 수치로 단순화하는 시대 속,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여 인간의 내밀한 시간과 감정의 흔적이 담긴 사물| 을 조명하고 익명으로 흘러간 시간 속 사라진 이들의 감각과 잔여물을 따라간다.

 

 처음 숨을 들이쉴 때, 말 없는 것이 곁을 감싼다.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감싸는 수건은 어느새 조용한 바깥 면이 되어 우리의 가장 사적인 기억을 흡수한다. 말없이 생겨난 것들은 그 자체로 삶의 부산물이며, 무심코 남겨진 이 물리적 흔적들은 무명인의 인간상을 형성한다.

 

기억되지 않는 존재와 감각되는 사물의 간극에서, 여전히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묻고 있다.

 

 

- 무명인의 부산물 _ 기록되지 않은

 그들도 욕망했고, 소속되었으며, 흔적을 남겼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수건이라는 사물은 신체에 가장 밀착된 기억의 표면으로 기능하며 익명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감지되는 흔적을 따라가며 익명성에 의한 불완전한 정체성의 시각화, 직물의 저항과 물감의 번짐,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 그려지는 것이 아닌 발생하는 것으로서의 존재, 이 존재는 완전하지 않지만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 무명인의 부산물 _ 감정선의 표식

 삶의 경계를 함께해온 수건이 이제 깃발로 세워진다. 이 깃발은 승리나 정복의 상징이 아니다. 한 개인이 남긴 감정의 편린, 때론 타인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무명인의 자리를 나타내는 표식, 감지되기를 바라는 무명인은 우연한 만남을 바란다.

2004-2009 기록되지 않은 무명인

2010-2019 기록되지 않은 무명인

2020-2024 기록되지 않은 무명인

​부록

2024

나를 비롯한 그대들 에피소드7 : <무명인의 부산물> part.1

무명인의 탄생, 그 동시에 생겨나는 부산물은 탄생을 알리며, 이것은 한 무명인이 갖게 될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에게 친숙한 수건이라는 사물은 신체를 보호하거나 닦는 데 쓰인다. 이 직사각 형태로 잘 짜여진 직물은 실생활에서 가장 가깝고 밀접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수건이나 천과 같은 직물에 의해 신체가 감싸져 보호받으며, 무명인의 인생은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출산이나 첫돌(결혼,행사)등을 축하하는 답례품으로 축하객에게 수건을 선물해 주는 관습이 있다. SNS가 없던 시대엔 우편이나 전화 통화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직접 자리에 가 축하해 주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재, 현대사회에 들어 변화한 많은 부산물과 함께 디지털매체를 통한 현대인의 낭만적 거짓이 시작된다. 디지털매체를 통해 무명인의 욕구를 촉진 시키며, SNS 게시물에 반복적이고 흥분을 일으키는 행위들로 낭만적 거짓을 타인에게 투영시킨다.

 

 90년대 이전부터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시대의 다름과 동시, 표현의 매체가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현대인의 낭만적 거짓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변화 속에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다양한 부산물의 이원적인 모습은 무명인 개인의 인간상을 이야기한다.

 

 무명인의 부산물을 조형화하고 조형화된 부산물은 무명인 인간상에 있어 남겨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기록물로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볼 수 있다.

 우리가 설계한 지표대로 시대 흐름이 변화되면서 편리에 의한 잔여물이 남겨지듯 부산물 또한 발생하게 되는데, 이 부산물들은 우리가 지나쳐 온 순간들을 기록한(된) 산물이며, 무명인의 인간상을 이야기한다.

과거로부터 설계한 지표, 현재에도 변화하는 시대적 배경에 무명인의 자리는 여기이다.

21세기 디오라마: 문민의 인간 극장

 

 

이민수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미술사학자)

 

 

 문민의 작업은 ‘현대인’을 주제로 한다. 그 스스로를 비롯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묘사하며, 그러한 인간을 작가는 ‘현대주의자(modernist)’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현대성(modernity)’을 지닌,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일 텐데, 그렇다면 여기서 작가가 의미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문화 일반, 혹은 예술 일반에서 사용하는 용어 ‘현대성’과는 구별되는 작가만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작가가 특화한 ‘현대주의자’ 개념을 중심으로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의 작업 전반을 살펴보고자 한다. 강철 용접 조각에서부터 영상, 판화, 회화, 그리고 최근 오브제 설치 작업까지 전방위로 매체를 넘나들며 조각적 특질을 접목하고 있는 문민의 작품 세계에 접근해 그 변환과 확장의 양상을 기술한다.

 

소통 불가, 관계 단절의 시대 너와 나

 

 2014년 첫 번째 개인전 《같은 공간, 다른 생각: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문민이 선보인 작업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Moai) 석상을 닮은 두상 시리즈였다. 지름 1미터에서 높이 1미터 50센티미터 남짓한 커다란 인간의 머리 형태에 단순하게 자리잡은 눈과 코, 그리고 대체로 두상의 일부는 절단면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두상은 강철로 된 다양한 크기의 원판을 용접으로 이어 붙여서 만든 입체이다. 따라서 내부는 비어 있고, 원판과 원판 사이 틈새는 흡사 투각(透刻)의 효과를 낸다. 이로 인해 큰 크기의 작품임에도 육중함보다는 조형적인 형태감에 눈길이 간다.

동전만한 크기부터 손바닥만한 크기에 이르는 강철 원판은 작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이자 의미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세포와도 같은 원형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이어 붙인 작업은 생명체 내부의 세포들이 이어져 있는 유기체적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결과는 유기체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우선 작가는 이 작업의 제목을 NO.1부터 시작해 번호를 매겨 부여했다. 강철 원판이 지닌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에 눈과 코의 형태는 있으나 귀와 입이 없어 듣고 말할 수 없는 형태로 제작된 이들은 사실상 거의 똑같이 생겼다.

 작가는 이처럼 개성이 제거된,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소통 불가의 인간 형상을 제작함으로써 여기에 오늘의 각박한 현실을 각자 살아내기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요컨대 그는 타의이든 자의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처하고 선택한 상황, 소통이 금기시되고 서로와 단절되어 있는 관계의 문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민의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전시에서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오면 센서가 그 움직임을 감지해 인공 안개를 분사하도록 했다. 일종의 공기처럼 작품과 관객 사이를 메우고 흐르는 안개는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수인 산소의 의미였다고 한다. 어쩌면 숨쉬고 말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오고 가는 숨결을 대신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 첫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아우르는 주제와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소통과 관계성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고 결과적으로 ‘단절된 소통의 복구와 관계성 회복’의 기대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문민의 작업 근간을 이루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Part 1. 사각형에 갇힌: 나를 비롯한 그대들 Episode I-III

 

 문민의 첫 개인전 이후 작업은 2016년 《나를 비롯한 그대들 Episode I: COMA》시리즈를 시작으로 2017년에 두 번째 에피소드 ‘사거리’, 2018년 세 번째 에피소드 ‘이 시간에 보다’, 2020년에 네 번째 에피소드 ‘인간 기술서’, 2021년 다섯 번째 에피소드 ‘정제된 인간’, 그리고 2023년에 여섯 번째 에피소드 ‘양가적 감정’까지 전개되어 오늘에 이른다. 작가노트에 따르면 그는 이 시리즈 작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를 비롯한 그대들 에피소드’는 인간을 단순화하여, 사각형 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사각형으로 축조된 형상은 그대들이 구축한 현시대를 반영합니다. 구축된 시대에서 인고하며 살아가는 그대들을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축조된 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주의자의 모습을 관찰하며, 직관적 시선을 통해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무수한 것들을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고 현시대를 기록합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가 인간을 묘사하는 방식은 ‘단순화’이다. 얼굴과 몸통, 다리와 발은 사각형으로 전환되고, 이목구비를 비롯해 팔과 손은 생략되었다. 눈, 코, 입, 귀와 손이 없기에 감각할 수 없는 인간이다. 작가는 이를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 불완전한 인간은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데, 현대주의자는 바로 이들을 일컫는다. 작가가 볼 때 현대의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세상의 프레임=ism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에피소드 I, II, III 시리즈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2016년에 발표한 첫 번째 에피소드 ‘COMA’에서 작가는 개별 작품 제목을 ‘나이, 성별, 직업’으로 일괄 표기했다. <32세_남성_취업준비생>, <만18세_여성_학생>, <birthday 56 age woman>이라는 제목 하에 묘사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각형 머리와 몸통, 다리, 발을 가졌는데, 이목구비와 팔이 없음에도 제스쳐와 간략한 소품만으로 제목에 적힌 인적 사항과 묘하게 부합되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 에피소드 ‘사거리’와 세 번째 에피소드 ‘이 시간에 보다’의 개별 작품 제목 역시 ‘날짜, 시간’으로 표기되었다. 작가는 특정 장소와 시간대의 사람들을 관찰해 그들이 어떻게 서있고 움직이는지를 묘사하고 기록함으로써 현대인의 전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들 각자는 제 갈 길을 간다. 저마다의 길로 향하기에 서로가 스쳐 지나갈 뿐, 동행이나 만남을 통한 소통과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Part 2. 21세기 디오라마: 나를 비롯한 그대들 Episode IV-VI

 

작가는 때로 이 사각형의 불완전한 인간을 사각형의 공간, 일종의 무대에 위치시킨다. 그중 독특한 방식 가운데 하나는 철판이나 구리로 구획한 네모난 공간 안에 있는 네모난 인간이다. 2019년 무렵부터 선보인 이 작업은 기존 작업에 공간 요소를 더해 만든 축소 모형, 즉 미니어쳐(miniature)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주 단순화한 디오라마(diorama)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9세기에 등장한 디오라마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한 생생한 배경 화면 앞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음향이나 조명을 동원해 관람자로 하여금 일종의 가상체험을 가능케 한 근대 오락물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에 이동식 극장 장치로 활용되었던 디오라마가 점차 변형되어 오늘날에는 특정한 장면이나 상황을 실감나게 구현한 축소 모형을 의미한다.

문민의 작업은 이러한 디오라마와 유사하다. 그는 원근법적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얕은 부조의 공간 모형 안에 그가 현대주의자로 명명한 사각형의 인간을 역시나 작게 축소해 배치했다. 공간은 사각형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원형이나 삼각형, 또는 계단 형태일 때도 있으며, 현대인이 구축한 현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관람자는 이 그럴 듯한 모형을 통해 현대주의자가 처한 상황을 실감하게 된다. 어쩐지 네모난 현대주의자는 결코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이는 한편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가 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1952)에 나오는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극은 둘의 대화와 지문으로 이렇게 끝이 난다.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극 전개 내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의 기다림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기다리는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 왜 기다리는지, 심지어 고도가 오기로 했는지, 그가 누구(무엇)인지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 문민이 만든 무대 안에서 현대의 인간은 감정과 감각을 드러낼 수 없는 신체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무대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만남과 소통을 통한 적극적인 상호 유대와 관계는 불가능하지만 순간의 마주침과 제스처로 느껴지는 희미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협력, 갈등, 그리고 무관심 등을 무한히 반복하며 그들의 존재 의미를 추구한다. 또는 무한한 기다림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줄 유일한 존재자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말이다.

​  2020년에 문민이 발표한 《나를 비롯한 그대들 Episode IV: 인간 기술서》는 기존 입체 작업과 달리 평면의 회화로 선보인 작업이다. 스템핑 기법으로 제작되어 엄밀히 말하면 회화보다는 판화에 가깝지만, 에디션이 없는 모노 프린트이다. 작가는 철물 원형을 실리콘으로 떠서 만든 사람의 귀 모양 스템프와 지문 스템프를 종이에 반복해서 찍어 얼굴 또는 두상의 형태로 만들었다. 여전히 눈, 코, 입이 없는 인간의 얼굴, 그러나 귀와 지문이라는 개인 고유의 표식으로 정체성이 부여된 얼굴이다. 작가는 이를 ‘인간 기술서’라고 소개했다.  

 

이 기술서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에게는 고유의 바코드가 있습니다. 사람의 귀와 지문입니다. 나를 비롯한 그대들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함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마치 상품에 새겨진 바코드처럼 자신임을 나타내는 지문은 각각의 모양이 다르며, 같은 지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우 희박하고, 작은 상처에도 변화하지 않고, 이 고유함은 곧 우리에게 얼굴과도 같습니다. 나를 비롯한 그대들의 바코드가 기록된 이 기술서를 그대들과 공유합니다.

 

  귀와 지문 모양으로 온통 뒤덮인 얼굴은 비록 이목구비가 결여되어 감정과 감각이 불가능한 익명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존재 자체가 고유함으로 이루어진 개별자임을 의미한다. 혹은 이를 뒤집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표면적인 정체성일 뿐, 실제 그가 표출하는 감정이나 감각은 알 수 없기에 결국 허상의 관계임을 나타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민은 이후로도 다섯 번째 에피소드 ‘정제된 만찬’과 여섯 번째 ‘양가적 감정’ 시리즈를 통해 현대인의 표면적이고 허구적인 인간 관계를 묘사해왔다. ‘정제된 만찬’에서는 알루미늄 표면에 열을 가해 지문과 같은 무늬가 생긴 네모난 인간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양가적 감정’에서는 화려하게 채색된 알루미늄 판 위에 회화적인 터치로 네모난 인간을 그려 넣었다. <현대주의자(a modernist)>라는 개별 작품 제목에 각각 그려진 인물의 행위를 설명하는 부제를 덧붙였다.

회화적인 요소를 도입한 ‘양가적 감정’ 시리즈의 또 다른 변주도 있다. 전시장 벽이 걸린 것이 아닌 바닥에 세워진 알루미늄 판 한쪽 면 일부에는 거울을 달아 작품 앞의 관람자 모습이 비치도록 한 것이다. 또는 알루미늄 판에 네모난 인간 모양을 뚫어서 그 사이로 다른 관람자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전시장의 작품 앞에 스톱워치를 두어 관람자가 누를 수 있게 함으로써 숫자로 입증된 현대의 인간을 기록하기도 한다.

 문민의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그가 묘사하는 ‘현대주의자’가 다름 아닌 너와 나, 우리들의 모습이며 작가 자신을 포함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현대주의자의 속성은 감정과 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얼굴의 기관과 팔, 손가락 등은 제거되었다.

그나마 눈, 코, 입, 또는 귀가(오직 귀만으로) 묘사된 경우에는 두상만 존재할 뿐, 몸통과 다리가 없다. 전자의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서있기와 걷기, 앉기 등의 행위뿐, 감정과 감각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후자의 경우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어쩌면 생각하기까지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 이후 실행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현대주의자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한다. 이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마치 연출자처럼 그들을 무대 위에 올려 공연을 지속한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를 빌리자면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함께 있고 이미 타인에 속해 있는 ‘공동현존재(Mitdasein)’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인간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지만 상호 의존하면서 그들이 처한 고된 현실을 견뎌 나간다. 한 마디로 우리는 서로에게 각자의 현실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만남, 나의 또 다른 나

 

  최근 문민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 개인의 고유한 역사(?)가 담긴 수건을 수집해 오브제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가 “무명인의 부산물”이라고 부른 수건에는 ‘○○○ 첫돌 기념’, ‘○○○여사 칠순’, ‘○○○선생 회갑’ 등, 한 사람의 고유 정보가 담긴 문구가 날짜와 함께 적혀 있었다. 그는 지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낡은 수건들을 요청해 모았고, 그 수건들로 겉면을 감싼 네모난 상자들로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각형 인간, ‘현대주의자’를 만들었다.

  이 거대한 현대주의자를 전시장 한 가운데 위치시키고 그 주위를 또 다른 현대주의자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각각에 관해서는 <무명인, ○○세>라는 제목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ritual)을 치르는 듯한 무명인들의 행렬은 수건에 적힌 과거 누군가의 기념일에 초대된 이들을 연상시키는 한편, 그들 모두 같은 삶의 궤적일 것이라는 점도 깨닫게 한다.

  비록 표정과 감정을 보여줄 수 없고, 드러내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너는 나의 ‘또 다른 나’로서 내 존재를 증명해 줄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하염없이 너를 찾고 기다린다. 문민은 자신의 작업에 이러한 우리 시대 인간, 너와 나의 모습을 담아 전시라는 무대에 올린다. 작가의 기다림에 부응해 어쩌면 관객도 그 곳에서 또 다른 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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